고려의 외교와 전쟁: 송, 요, 금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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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외교와 전쟁: 송, 요, 금과의 관계

by YM Study Infomediary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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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외교

  고려 시대의 외교와 국제 관계는 송, , 금과의 외교 관계와 북방 민족과의 전쟁 및 협상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기 고려는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자국의 안보를 지키고,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외교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1. , , 금과의 외교 관계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중요시했습니다. 고려와 송은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고려는 송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시켰습니다. 송과의 외교는 고려가 한반도 내에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나라로서의 위치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고려는 송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비단, , 도자기와 같은 고급 물품을 들여왔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요나라(거란)와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요나라는 고려와의 충돌 끝에 10세기 후반부터 세 차례에 걸쳐 침입하였는데, 이는 강동 6주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고려는 서희의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 6주를 획득하며 요나라와의 분쟁을 잠시 종결지었습니다. 하지만, 고려와 요나라의 관계는 이후에도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금나라와의 관계는 요나라의 멸망 이후 형성되었습니다. 고려는 처음에는 금나라에 대항했으나, 금이 북방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실리 외교를 선택하여 금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는 고려가 북방 민족의 공격을 피하고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2. 북방 민족과의 전쟁 및 협상

  고려는 거란, 여진과 같은 북방 민족과의 전쟁을 통해 나라를 방어했습니다. 거란은 11세기에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는데, 이를 거란의 침입이라고 합니다. 거란의 첫 번째 침입 때는 서희의 외교적 협상으로 전쟁을 피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침입에서는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이 거란군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특히, 귀주 대첩(1019)은 고려의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며, 고려가 북방 민족에 대한 방어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여진족은 거란의 후계 세력으로, 초기에는 고려에 공납을 바치는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여진족이 점차 강성해지면서 고려는 여진족의 세력을 인정하고, 이들과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고려는 금과의 관계를 새롭게 조정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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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란, 여진과의 관계 및 방어 체제

  거란과의 전쟁 이후 고려는 강화된 방어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개경(현재의 개성)을 중심으로 나성을 쌓아 방어력을 강화하고, 국경 지역에는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외부 침략에 대비했습니다. 이러한 방어 체제는 고려가 거란과 여진의 침략에 대비하고, 나라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여진과의 관계는 고려 말기까지도 중요한 외교 과제였습니다. 여진족이 점차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며 고려와의 관계가 변화했지만, 고려는 여전히 북방 민족과의 평화적 공존을 추구했습니다. 금나라가 성립한 이후 고려는 금나라에 사대 외교를 하며, 북방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고려의 외교와 국제 관계는 송, , 금과의 외교와 북방 민족과의 전쟁 및 협상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고려는 주변의 강국들과 균형 있는 외교를 통해 자국의 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였으며, 이러한 외교 노력은 고려가 오랜 기간 동안 한반도에서 독립적인 나라로 유지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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