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외세 침략과 개항: 병인양요, 신미양요, 그리고 강화도 조약
본문 바로가기
수학능력시험/한국사 영역

조선 후기 외세 침략과 개항: 병인양요, 신미양요, 그리고 강화도 조약

by YM Study Infomediary 2024. 11. 21.
반응형

조선 개항과 강화도 조약 전환점이 된 역사적 순간

  19세기 조선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서양 열강과 일본이 아시아에 영향을 확대하면서, 조선은 국경을 넘어오는 외부의 위협에 대응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같은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고, 결국 강화도 조약 체결로 조선은 개항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를 세 가지 주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병인양요: 프랑스군의 침략

  병인양요(1866)는 조선이 프랑스와 충돌한 사건입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를 탄압하며 많은 신자와 프랑스 선교사들을 처형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는 조선에 대한 보복으로 군대를 파견해 강화도를 공격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주요 방어 요새인 정족산성과 강화도 외성을 공격했으나, 조선군의 저항으로 인해 퇴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프랑스군의 침략을 막아내며 자주성을 지켰지만, 서양 열강의 군사력이 조선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병인양요는 조선이 처음으로 서양의 침략을 직접 경험한 사건으로, 이후 외세의 위협에 대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신미양요: 미국의 침략

  신미양요(1871)는 미국과 조선 간의 충돌로, 병인양요 이후 두 번째로 일어난 외세의 군사적 침략 사건입니다. 당시 미국은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하며 군대를 파견해 강화도를 공격했습니다. 미국군은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를 차례로 점령하며 조선군을 압박했습니다.

  특히,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끝까지 저항했지만, 현대식 무기를 갖춘 미국군에 패배했습니다. 신미양요는 조선이 서양의 군사력을 실감한 또 다른 사건이었으며, 외세 침략에 대비한 국방력 강화를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응형

3. 강화도 조약: 개항의 시작

  외세의 침략은 군사적 충돌뿐 아니라 조선이 외국과의 조약을 체결하며 국경을 열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강화도 조약(1876)은 일본이 조선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조선이 개항하게 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일본은 서양 열강의 방식을 모방해 조선에 무력 시위를 벌이며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강화도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하고 일본 상인들에게 통상권을 허용한다.

- 일본은 조선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나, 자국민은 조선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치외법권).

- 일본은 자유로운 측량권을 얻는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세의 압력으로 근대화를 강요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조선은 본격적으로 세계 질서에 편입되게 되었습니다.

 

4. 외세 침략과 개항의 의의

  19세기 후반의 외세 침략과 개항은 조선이 전통적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습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외세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사건으로, 조선에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했습니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국제 사회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외세의 압력 속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한 과제를 남겼습니다.

반응형